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추구집지도2편), 사자소학붕우편,백의종군,춘효, 제주도콩난,

추구집/ 추구는 우리 선조들이 애송한 詩시의 글귀를 정선하여 뽑아 놓은 다섯 글자로 된 아름다운 시이다

한학 교양서로 한문을 익힘은 물론 우주 삼라만상에서부터 자연의 오묘함을 일깨워 주었다

일상생활에 스며있는 지혜오 슬기를 한 구 한 구 아름답게 꾸며 누구나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애송할 수 있는

초 학서 初學書 이다, 한학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추구집 2편)

秋葉霜前落 春花雨後紅 추엽상전락 춘화우후홍 글쓴이 지환 함두빈

秋葉霜前落      추엽상전락      가을 잎은 서리 앞에서 떨어지고, 

春花雨後紅      춘화우후홍       봄꽃은 비 온 뒤에 붉어지는구나.

  

 

사자소학은 //우리가 반드시 배워서 지켜야 할 생활규범과 어른을 공경하는 법 등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가르치는 생활철학의 글이다. 옛 선조들이 서당에서 공부할 때 처음 배우던 것으로 모든 구절이 넉자로 정리된 글로서 한문을 익힘은 물론, 어른과 부... 문화콘텐츠

사자소학 붕우 편言而不信(언이불신)非直之友(비직지우)

言而不信(언이불신)이면 : 말을 하되 미덥지 못하면

非直之友(비직지우) 니라 : 정직한 친구가 아니다.

출처] [四字小學] 사자소학 /  붕우 편(朋友篇)

 

 白衣從軍 백의종군 글쓴이 함 두빈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이 군대를 따라 정쟁터로 나감.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고 맡은 임무를 다함.

손사풍 따라 급살병이 발병합니다. 손사풍은 손사방에서 부는 바랍니다. 손사방은 동남방인데 대한민국의 동남방은 일본입니다. 1년 중 손사풍이 부는 때는 절기상 입하 소만 때입니다. 임진왜란은 손사풍이 부는 때에 일어났습니다. 손사방에 있는 일본이 손사풍 따라 조선을 침략한 것이 임진왜란입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일본을 물리치고 조선을 구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더라면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망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 5월 23일 시작되어 1598년 12월 16일까지 7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9월 18일에 죽자 철군을 단행했으나, 이순신 장군은 퇴로를 차단하고 섬멸하고자 노량해전을 벌였으나 안타깝게도 12월 16일 유탄에 맞아 절명하고 말았습니다.

 

 손사풍 타고 발발한 임진왜란과 마찬가지로 급살병도 손사풍 타고 발생합니다. 임진왜란 처음과 끝을 장식한 대표적 인물이 천곡 송상현 동래부사와 여해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입니다. 송상현은 초창기에 일본군에 고군분투하다 역부족으로 절사 했지만,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을 하면서까지 일본군을 격퇴하여 조선을 지켜냈습니다. 증산상제님은 천곡 송상현 동래부사의 기운을 끌어들여 27년 헛도수 공사를 보셨고, 조선의 관운장으로서 관운장에게 주어졌던 충무라는 시호를 가진 여해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의 기운을 붙여 대인대 의한 군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대시국 의통 군 60만이 조직되도록 하셨습니다.  

 

1. 천곡 송상현 동래부사와 27년 헛도수

 

@ 다시 양지(洋紙) 석 장을 펴놓고 귀마다 천곡(泉谷)이라 쓰시거늘, 치복이 여쭈어 가로대 "어떠한 사람이니이까" 가라사대 "옛날에 원(元) 노릇 가서 절사(節死)한 사람이니라" 하시고, 치복과 송환을 명하사 양지를 마주 잡아 들게 하시고 가라사대 "그 모양이 상여에 호방산(護防傘)과 같도다" 하시고, 양지를 땅에 놓게 하신 뒤에 갑질을 명하사 가라사대 "밖에 나가서 하늘에 구름이 있는가 보라" 갑질이 나가보니 서쪽 하늘에 한 점의 구름이 있거늘, 돌아와 아뢰니 가라사대 "구름이 하늘을 덮는가 보라" 하시거늘 다시 나가보니 경각에 구름이 하늘을 덮었는지라. 들어와 아뢰니 양지 중간에 호승예불(胡僧禮佛) 군신봉조(君臣奉詔) 오선위기(五仙圍碁) 선녀직금(仙女織錦)이라 쓰시며 치복에게 일러 가라사대 "궁을가에 '사명당(四明堂)이 갱생'이란 말을 중 사명당(四溟堂)이란 말로 알아왔으나 그릇된 말이요 이 사명당(四明堂)을 이름이라. 조화는 불법에 있으니 호승예불 기운을 걷어 조화를 쓰고, 무병장수는 선술에 있으니 오선위기 기운을 걷어 무병장수케 하고, 군신봉조는 장상이 왕명을 받는 것이니 그 기운을 걷어 나라를 태평케 할 것이요, 선녀직금은 선녀가 비단을 짜는 것이니 그 기운을 걷어 창생에게 비단옷을 입히리니, 유월 보름날 신농씨 제사를 지내고 나서 일을 행하리라. 올해가 천지의 한문이라, 이제 일을 하지 못하면 일을 이루지 못하리라." (대순전경 pp286-288)

 

@ 또 양지(洋紙)에 이십칠 년(二十七年)이라 쓰시거늘 그 뜻을 물은 대 가라사대 "홍성문이 회문산(回文山)에서 이십칠 년 동안 헛공부를 하였다 하니, 이로부터 이십칠 년동안 헛도수가 있노라." 또 양지 한 장을 열두 조각으로 내어 조각마다 글을 쓰신 뒤에 한 조각은 친히 불사르시고 열한 조각은 치복을 명하여 불사르시니, 문득 비가 크게 내려 이 비로 인하여 보리를 잘 먹게 되니라. (대순전경 p288)

 

2. 여해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와 팔봉 

 

@ 하루는 차윤경(車輪京)에게 일러 가라사대 "저녁에 여덟 사람을 얻어서 너의 집에 모아놓고 나에게 알리라." 윤경이 명하신 대로 여덟 사람을 약속하여 집에 모이게 하였더니 문득 아홉 사람이 모이게 된 지라. 윤경이 상제님께 사유를 고하니 가라사대 "무방하니 한 사람은 나의 시종으로 쓰리라." 하시고, 윤경의 집에 이르사 등불을 끄신 뒤에, 상제님께서 한 사람을 데리고 중앙에 서시고 여덟 사람을 팔방으로 벌려 세우신 뒤에, "건감간진손이곤태(乾坎艮震巽離坤兌)"를 외우게 하시고, 방관한 종도 이십여 인으로 하여금 각기 정좌케 하여 따라 외우게 하사 밤이 깊어서 그치게 하신 뒤에 불을 켜시고 그 사람들에게 각기 훈계하신 뒤에, 한 편(쪽) 눈이 먼 차공숙(車公淑)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통제사(統制使)라. 연중 360일을 맡았나니, 돌아가서 360인을 구하여오라. 이 일은 곧 팔봉(八封)을 맡기는 공사니라." 공숙이 명을 받들고 돌아가서 수일 후에 한 사람을 데리고 오거늘, 상제님께서 그 직업을 물으시니 농사에 진력하여 다른 출입이 없고 다만 추수 후에 한 번 시장 출입이 있을 따름임을 아뢴 데, 가라사대 "참으로 순민(淳民)이로다." 하시고 정좌하여 "잡념을 두지 말라." 하신 뒤에, 윤경에게 "밖에 나가 구름이 어느 곳에 있는가 보라." 하시니, 윤경이 나가 살핀즉 하늘이 맑고 오직 상제님 계신 위에 돈잎만 한 구름 한 점이 떠 있을 뿐이어늘, 윤경이 그대로 아뢰니 가라사대 "다시 나가서 그 구름이 어디를 향하여 펴이는가 보라." 윤경이 다시 나가보니 벌써 구름이 온 하늘을 덮고 북쪽 하늘만 조금 터져서 가리지 못하였는지라. 그대로 아뢰니 가라사대 "그곳이 조금 터졌다고 안될 리 없으리라." 하시고 두어 시간 후에 그 사람을 돌려보내시니라. (대순전경 pp270-272) 

 

내 세상에 관운장이 삼계병마대권(三界兵馬大權)을 가졌느니라. 내 세상에 운장이 성제 군의 반열에 오르느니라. 운장의 금일이 재조와 지략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의리일 뿐이니, 천지간에 의로움같이 큰 것이 없느니라. 나는 가을 서릿발 같은 절개와 작렬하는 태양과 같은 충성을 사랑하느니라. 사람이 의로운 말과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진동하느니라. 하늘이 능히 못할 것이 없지만 오직 의로운 사람에겐 불가능한 것이 있느니라. 나는 천지의 보배를 갖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의로움을 보배로 삼노라. 만약 의로운 일심자가 있다면 내가 비록 서촉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찾아 만나리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p42-43)

 

春曉/ 孟浩然오언절구   글쓴이 地奐 咸 斗彬

春眠不覺曉 處處聞啼鳥

夜來風雨聲 花落知多少 

춘면불각효 하니 처처문제조 라

야래풍우성에 화락지다소 라.

 

봄 잠에 날 밝은 줄 몰랐더니 곳곳에 새들이 지저 기네

간밤에 비바람 불었거니 꽃잎은 얼마나 떨어졌을꼬.

 

춘효 (春曉) // 맹호연(孟浩然), 봄의 새벽

춘효 (春曉) 맹호연(孟浩然) 오언절구
봄 잠이라 새벽임을 깨닫지 못하더니곳곳에서 새 울음소리 들리네.
엊저녁 비바람 소리에꽃 떨어짐이 얼마인 줄 알리오.
春眠不覺曉 處處聞啼鳥
夜來風雨聲 花落知多少


맹호연의 춘효(봄 새벽)는 고래로 널리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온 유명한 한시다. 비록 5 언 20자로 짧지만 비교적 쉬운 한자로 씌어 있고, 내용은 단순하나 봄의 감각을 잘 표현한 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이 시를 감상해 보시라.

이른 새벽 요란한 새소리에 나른한 봄 잠이 깨고, 몸은 아직도 침상에 누워서, 엊저녁에 불었던 비바람 소리를 연상하고, 그 비바람으로 봄꽃이 꽤 많이 떨어졌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기분 좋은 봄날 아침 풍경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맹호연 (孟浩然 689~740년)은 중국 자연 시인 중 대표적인 사람으로 도연명과 사령운(謝靈運)의 영향을 받고 왕유와 더불어 멋진 자연 시를 써냈으며, 특히 오언시에 능하여 이백, 두보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왕맹(王孟)이라고 하여 왕유와 맹호연을 자연 시의 쌍벽이라고 칭하는데, 사실 맹호연이 왕유보다 12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온 여정은 반대였다. 즉 왕유는 높은 관직에까지 올라 부귀영화를 다 겪은 뒤에 자연으로 돌아가 전원생활을 즐기며 시를 썼고, 맹호연은 본디 은사로 처세하다가 40세 전후에 관직 진출을 도모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장강 지방을 두루 유람하면서 많은 산수시를 써놓아 왕유 못지않은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맹호연은 인물이 훤칠하고 시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벼슬은 하지 못했지만, 당대의 유명한 정치인과 시인 왕유, 이백, 왕창령, 장구령, 독고책 등과 절친한 망형지교의 사이였다고 한다.

맹호연은 만년에 관리되기를 포기하고 장강, 회수, 오 월 등지를 유람하면서 많은 자연과 산수에 대한 시를 썼는데, 지금도 260여 수가 남아 있으며, 52세에 죽었다.


맹호연의 춘효는 이후 많은 동양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조선시대 후기 영조 시대 김덕형의 오절시 한 수를 인용해 보겠다.

춘효 (春曉) 김덕형

시냇가 버들에는 바람이 녹색 잎을 흔들고
산의 꽃은 비에 봉우리를 터트리네.
새벽하늘에 연기 같은 안개가 자욱하니
봄빛이 있는 듯 없는 듯.

 

 

 

 제주산 콩난

 

 

현무암 석부작

지환의 블로그

산머루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