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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소학,조견오온,파산중적,불심, 염좌 ,자귀꽃 거미줄바위솔)

사자소학 효행 편
사자소학은 우리가 반드시 배워서 지켜야 할 생활규범과 어른을 공경하는 법 등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가르치는 생활철학의 글이다. 옛 선조들이 서당에서 공부할 때 처음 배우던 것으로 모든 구절이 넉자로 정리된 글로서 한문을 익힘은 물론, 어른과 부... 문화콘텐츠

사자소학 효행편)骨肉雖分(골육수분)本生一氣(본생일기) 글쓴이 지환 함두빈 시년팔십세

骨肉雖分(골육수분)이나 : 뼈와 살은 비록 나누어 졌으나

本生一氣(본생일기)요 :    본래 한 기운에서 태어났으며,

 

 

 

   조견오온 개공도일체고액.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사리자 ( 舍利子 )   글쓴이 지환 함 두빈시년팔십세

       

오온(五蘊)이란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을 말하는 것이다.

정미(精微)로히 밝아서 눈이 항상 경계를 바라보므로 색(色)이라 한다.

모든 법을 탐하여 구하고 수행하여 증득함을 바라므로 수(受)라 한다.

모든 법의 인연에 얽히어 유출(流出)이 쉬지 않으므로 상(想)이라 한다.

청정한 계율울 정묘(精妙)로히 지켜 만행(萬行)을 수행하는 것을 행(行)이라 한다.

여러 가지를 분별하여 법을 따라 유전(流轉)하는 것을 식(識)이라 한다.

이 다섯 가지 법의 장애를 입어 깨닫지 못하므로 온(蘊)이라 한다.

삼계(三界)에 벗어나지 못하고 윤회(輪廻)가 멈추지 않으므로 이름하여

고액(苦厄)이라 한다.

보살(菩薩)이 자기의 마음 근원이 본래 청정한 줄 살펴 요달하니 앞의 다섯 가지의

법이 생긴 곳이 없고 본래 비고 고요하여 털끝만큼이라도 가히 얻을 것이 없으므로

오온(五蘊)은 이 모두 텅 빈 것으로 비추어 보고 일체의 괴로움을 건넜다.

     [5]. 사리자(舍利子)

이는 몸과 마음의 두 가지 모양으로 오음(五陰)의 법을 거듭 밝힌 것이다.

사(舍)는 사람이오, 리자(利子)는 법이라는 말이다.

사람과 법의 두 모양에 많은 정의(定義)가 있으나 다 말할 수 없고 요약해서 말한다면

오로지 법을 위하는 근본인 것이다. 이제 모든 법을 밝히고자 하는데 몸과 마음을 떠나서

할 수 없으므로 사리자(舍利子)라 한 것이다. (부처님 십대 제자의 한분 사리불 존자로 칭함,)

破山中賊 易 破心中賊 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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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14.

 

 

파산중적이 파심중적난(破山中賊易 破心中賊難·)  글쓴이 지환 함 두빈 시년팔십세

산 속의 도적을 깨뜨리기는 쉬우나  마음속의 도적을 깨뜨리기는 어렵다(사람이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기는 어렵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 이기심 등 제 마음 속의 온갖 나쁜 마음들은 제어하기 힘들다). 중국 명나라 때 양명학으로 이름을 떨친 왕수인(王守仁)의 문집 양명전서(陽明全書)에 나오는 말이다,

 

佛心

불심 佛心  글쓴이 지환 함 두빈 시년팔십세

자비스러운 부처의 마음.

불교의 진리에 대한 믿음이 있는 마음

자세히 알지 못하거나 의심스러움

백제 사람들은 기와에 온갖 정성과 창의를 다하여 그들의 불심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가노 라  말도 못 다 이르고 가는가, 한 가지에도 나고도 가는곳 모른다, 같은 부모에게서

몸을 받아 한 철 인생을 살다가 뿔뿔이 흩어져 가는 길은 어느 갈래의 저승길인지 누이의

죽음을 떨어지는 나뭇잎에 비유하며 안타까운 정서를 표현한 **제망매가**의 구절이다

 

자연은 교과서야,

제망매가祭亡妹歌 제망매가가

시대저작자창작/발표시기성격유형분야

고대/삼국
월명사
신라 경덕왕
향가
작품
문학/고전시가

요약 신라 경덕왕 때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10구체 향가.

내용

신라 경덕왕 때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10구체 향가. ≪삼국유사≫ 권 5 감통(感通)7 ‘월명사 도솔가조(月明師兜率歌條)’에 실려 있다.

기록에 따르면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노래로, 작가가 재(齋)를 올리며 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홀연히 바람이 불어 지전(紙錢)을 날려 서쪽(서방 극락세계 방향)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 지전은 죽은 자에게 주는 노자(路資)로 지금도 장송(葬送) 때 볼 수 있는 것으로 꼭 불교 의식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죽은 뒤의 세계라고 하여 현세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 데서 나온 의식이다.

이 노래의 원가사와 현대어 풀이는 다음과 같다.

① 원문

生死路隱 此矣 有阿米 次肸伊遣

吾隱去內如辭叱都 毛如云遣去內尼叱古

於內秋察早隱風未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一等隱枝良出古 去如隱處毛冬乎丁

阿也 彌陀刹良逢乎吾 道修良待是古如

② 현대어 풀이

죽고 사는 길 예 있으매 저히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다이 한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누나

아으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내 도닦아 기다리리다.(양주동 풀이)

이 노래는 죽음에 부닥쳐서 죽은 자의, 그것도 골육인 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다. 그 명복은 막연한 것이 아니고, 월명이 승려이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를 불교적으로 관상한 것으로, 서방극락정토, 무량수(無量壽)를 누릴 수 있는 죽음이 없는 영원한 삶의 세계로 가기를 빈다.

즉, 그곳만이 가야 할 사후의 세계이고, 현세의 삶이란 그곳에 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막상 죽음에 다다랐을 때, 그것도 골육과의 사별에 임했을 때, 월명은 죽음의 현장성(現場性)을 느낀다.

인간세상이란 죽음과 삶이 명확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혼융(混融)되어 있는 것으로, 살아 있는 월명이 죽어가는 누이를 보는 것이다. 그 때 살아 있는 자신의 죽음을 누이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과 같이 한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누나’ 하여, 죽음에 대한 서정을 비유로써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여 죽음을 절감한다.

그러한 형상화는 누이의 죽음으로 더 한층 짙게 인식된다. ‘어느’란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있는 시간으로, 시시로 닥쳐 오는 죽음을 인식하게 해 준다.

죽음 앞에 서 있는 동류의식(同類意識)의 표현인 ‘한가지에 나고’는 현상적으로 인식되지만, 죽음에서는 그것은 미지이다(가는 곳 모르누나). 이것은 불교의 윤회사상에 바탕을 둔 무상인간의 변하여 달라짐을 말하는 것 같으나, 오히려 원고적(原古的)인 사후의 관념이다. 그래서 가는 곳을 비유하여 ‘이에 저에’라 표현하였다.

육도환생(六道還生)이라는 교훈적인 종교의 내세관에서보다는 삶 자체가 하나의 나뭇잎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생의 허무감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허무감은 결국 종교적으로 귀의하게 한다. 그래서 “미타찰에서 만날 내 도닦아 기다리리다.”하여 인생의 허무감을 아미타불에 귀의함으로써 종교적으로 승화시킨다.

무량수를 누릴 수 있는 미타찰, 서방극락정토에는 인간 누구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가서 누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도를 닦으며 기다려야 한다.

즉, 누이는 이미 그곳에 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원으로, 기원하는 바를 이루어진 결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초월적인 대상에게 기원하는 의식 노래로서의 특성이 나타나 있다.

한편, 이 작품은 제전이라는 의식적 배경을 도외시한다면 순수한 서정시의 자질을 갖게 된다. 죽음과 삶이 혼융된 인간세계에서 죽음과 삶의 갈등을 항상 겪어야만 하는 인간, 그가 느끼고 있는 삶에 대한 허무감 등은 인간이 넘지 못할 하나의 불가피한 상황으로, 이것의 인식과 생각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이 노래는 재의식(齋儀式)에서 죽은 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 극락왕생을 천도한 노래로 일종의 축(祝)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식적 형태에만 얽매이지 않고, 누이의 죽음을 계기로 하여 죽음에 대한 인식과 그것에서 느끼는 정서를 표현한 개성적인 서정시이기도 하다.

적절한 시어의 선택과 표현법으로 죽음에 대한 서정을 담고 있다. 집단 감정의 표현이나 어떤 목적의식에 의한 공리적인 노래가 아닌, 순수한 서정시로서의 지평을 열어 주는 노래이다.

염좌

자귀나무(부부나무) 밤에는 잎파리합침,  거미줄바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