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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화랑무공훈장,참전용사증서,6.25사변,분골쇄신,참전유공자가게도표

무성화랑 무공훈장  육군 상병  함  명옥/국방장관

 

참전용사증서 함 명옥/대통령   김 대중  국가보훈처장 이 재달

참전용사증서 함 두빈/대통령   김대중   구가보훈처장  이 재달

 

***무공훈장  ***

武功勳章

시대성격유형시행일분야

현대
법제, 상
제도
1950년 10월 18일
정치·법제/법제·행정

요약 전시(戰時)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

내용

무공훈장은 태극무공훈장(太極武功勳章)·을지무공훈장(乙支武功勳章)·충무무공훈장(忠武武功勳章)·화랑무공훈장(花郎武功勳章)·인헌무공훈장(仁憲武功勳章)의 5등급으로 구분된다.

<상훈법>에 의거하여 수여하는 이 무공훈장은 1950년 10월 18일 대통령령으로 제정, 공포되었으며 1951년 5월 21일 대통령령으로 1차 개정되면서 그 명칭이 1∼4등 무공훈장으로 구분되었던 것이 태극·을지·충무·화랑 무공훈장으로 변경되었고, 각 등급마다 금성·은성을 부착하여 수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63년 12월 14일 법률로 제2차개정이 있으면서 기존의 4등급에 제5등급 인헌무공훈장이 추가되어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고 함명옥 아버님은 6,25 사변때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그때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로 하였는데 6,25 무공훈장 찿아주기

조사단에서  67년만에 주인의 아들의 품으로 안기었습니다, 그것도 택배로 부처오니 좀 이상하네요 ,나라를 위해 희생

한 분들에게 대한 예우가 아니뜻 십네요,섭섭한 마음듭니다

나라를 위해 애쓰신유공자들은 연금으로 겨우살아가는데 , 일제 앞잡이들 후손들은 호강하면서 잘 살고 있는는데 후손들은 무엇을 배울지 안타가운 생각이 듭니다,

6,25전쟁 가사

가사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 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이 노래는 너무도 유명한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 “6,25 노래” 다,
6,25 전쟁 기념일은 우리나라의 “6,25 사변”을 상기하고, 멸공을 다시 생각  하는 날로 벌써 70주년이 되었다.
그날을 우리는 6,25 사변이라고 하며, 그날 일요일 새벽에 김일성 조선 인민군들이 기습 남침 하였고, 1954년

7월 27일 휴전 할 때 까지 수많은 젊은 군인들이 남북한, 유엔 군 등 137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많은 부상자와 피난민이 발생한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전쟁 이었다.
다행이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선은 두만강 과 압록강 까지 진격 하였으나, 인해전술로 중공군이 참전하여 1,4후퇴라는 치욕의 전쟁을 치루었고, 현재 까지 휴전 협정이 이루어진  전쟁이다.  그때가 벌써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아직도 남과 북은 서로 비무장 지대라는 155마일 휴전선 사이에 서로 대치되어 있는 우리 민족의 치욕과  원한의 역사를 기록 하는 날이 되고 말았다.
이런 날을 잃지 않기 위하여 <해야 솟아라> 시인 박두진 선생님이 작사 하고, <가고파>를 작곡한 김동진 선생님이 작곡한 우리 민족의 천추의 한이 서려있는 “6,25 노래” 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노래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절 <10년간 금지곡>으로 지정하였다고 하며, 가사를 개사 하였다고 한다.

 

작사자 박두진(朴斗鎭) 선생님은 (1916 - 1998) 까지 사셨으며, 경기도 안성(安城)에서 출생 하였다.

아호(雅號)는 혜산(兮山)이고.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청록파(靑綠派)시인입니다.
1939년 정지용 추천을 받아〈문장>에 <향현 (香峴)>,〈묘지 송〉·〈낙엽송〉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연세대학교 교수, 우석대학,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거쳐서 1972년 다시 연세 대학교 교수로 돌아와 근무하였다
시(詩)로는 <6,25의 노래>, <청산도>, <해>, <어서 너는 오너라>, <도봉>, <묘지 송>, 등이 있다.
신앙 체험을 고백하는 작품을 주로 썼고. 시집으로 <해> <청 록 집), <오 도> <포옹무한> 등이 있다.

 

작곡가 김동진 (金東鎭)선생님은(1913 - 2009)년 까지 사셨으며, 평안남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고. 평양

숭실 중학교, 숭실 전문학교를 졸업 하였다. 목사이신 아버지 영향으로 취학 전부터 서양 음악을 접하고, 일본

고등 음악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 하였다.
평양 숭실 대학 시절에 <봄이 오면> <뱃노래>를 작곡 하였으며,  <가고파>는 고등학교 때 작곡 하였다고 한다.
 1945년 해방 되던 해 평양 음악 대학 교수로 재직 하지만 <가고파>를 부르지 못하게 되자, 6,25사변에 남하하여 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정적인 가곡<내 마음> <목련화> <수선화> <조국 찬가> <진달래 꽃> 등 주옥같은 가곡을 작곡 하였고. 많은 군가와 , 교가(校歌)도 작곡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그동안 5년간 귀신도 모르게 전쟁준비를 해 온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습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라디오 방송으로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 오늘 새벽 4시에 북한 군들이 38선을넘어 남한을 쳐들어왔는데

우리 국군들이 다 물리칠 것이니 걱정 하지 마시기 바랍네다.

 

그러나 다음날은 이미 서울이 함락이 됩니다.

그러자 이승만은 수원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리고 국군들은 서울 다리와 철교 따위를 폭파해 버리는데

 

예나 지금이나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들은 국민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적을 막기위해 다리먼저 폭파시키는 우를 범하는 참으로 바보가 됩니다.

 

적들은 그런 것을 에상하고 이미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가는 방법을 다 준비를 해 놓은 것인데도 

그후 국군들은 서울의 다리, 금강의 다리, 낙동강의 다리 다리라는 다리는 모조리 없애 버리는데 

피난민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분골쇄신 粉骨碎身 글쓴이 지환 함 두빈 시년 팔십세

(1) 뼈는 가루가되고 ,몸은 산산조각이 됨

(2)목숨을 걸고 힘을 다함,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지극한 정성으로 있는 힘을 다한다는 말.그 일을 맡겨만 주신다면 분골쇄신으로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분골쇄신이 되더라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유의어 3건 쇄신분골 --아주 참혹하게 죽음

                  쇄골분신-- 뼈를 빻고 몸을 부순다는 뜻으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지극한 정성으로 있는

                                   힘을 다한다는 밀

                    분신쇄골 --아주 참혹하게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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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쇄골 – 다음 국어사전

아주 참혹하게 죽음

dic.daum.net

가루 분, 뼈 골, 부술 쇄, 몸 신. 분골쇄신.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도록 어떤 일에 온몸을 다 바쳐 노력한다는 의미다. 당(唐)나라 때 장방(蔣防)이 쓴 전기소설 '곽소옥전(小玉傳)'에 나오는 말이다. 시인 이익(李益)과 기생 곽소옥 사이에 얽힌 비극에서 유래했다. 무엇을 이루거나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할 때 분골쇄신하겠다고 하지만 종국에는 해피엔딩이 못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곽소옥전에 전하는 이야기도 비극으로 끝난다.
명문가 출신에다 약관의 나이인 이익은 관리 등용시험을 기다리며 장안(長安)에 머물며 명기(名妓)로 소문난 곽소옥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첩의 소생인 곽소옥은 자신의 신분이 미천해 이익과 함께하지 못할까 불안해한다. 이익이 지방관리에 임명돼 이별하게 되자 자신을 잊을까 걱정한다. 이익이 불안해하는 곽소옥을 안심시키게 위해 한 말 속에 분골쇄신이 나온다. "내 평생의 소원을 오늘에야 이루게 되었는데 몸이 부서져 뼈가 가루가 되더라도 그대를 버리지 않을 것을 약속하오"(平生志願 今日獲從 粉骨碎身 誓不相舍)하지만 고향에 돌아간 이익은 어머니가 정해 놓은 혼약을 뿌리칠 수 없었다. 약속을 저버린 것이 마음에 걸린 이익은 소옥이 단념하도록 연락을 끊지만, 이익을 잊지 못한 소옥은 그를 사모하다 병에 걸린다. 소옥을 불쌍히 여긴 주변사람들이 두 사람이 만나도록 일을 꾸미게 된다. 이익을 만난 소옥은 자신이 겪은 불행과 이익의 배반을 울부짖으며 숨을 거둔다. 이익은 혼귀가 된 곽소옥에 시달리다 평생을 불행하게 보낸다는 비극이다.
사람들은 어떤 과업이 주어지면 "분골쇄신 하겠다"는 말을 곧잘 한다. 그러나 그 말의 유래와 이면을 생각하면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변치않는 노력의 의미로는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는 견인불발(堅忍不拔)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일하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퍼컷을 유행시킨 윤 대통령은 "신나게 한번 일해봅시다"라고 했다. 해피엔딩 분골쇄신을 기대한다.

 

 

6,25 참전국가--- 전투부대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22개국6,25전쟁일, 

 

 

참전유공자 (함두빈 )가계도표.

6,25참천 훈장증   무성화랑 무공훈장  제5병사단  육군 상병 함명옥1954년  2021년 3월 15일자 유가족에게 연락

 

**참전 유공자 가계도표(함 두빈)**

 

부친 고.   육군 상병   함명옥 무성화랑 무공훈장

장인 고,  육군 소령   최봉래  국가유공자

본인      육군 병장    함두빈 월남참전 (십자성부대사령관 공로표창)

동생      육군 병장    함두봉  월님참전

매제      육군 병장    한원길  월남참전